“애플워치 울트라가 벌써 업데이트가 끝났어?”
WWDC는 애플이 다음 한 해의 기술 방향성을 소개하는 자리입니다. 애플은 매년 정기적으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기기 경험을 다져 나갑니다. 단순히 기능 몇 개를 더하는 것을 넘어 당장 풀어야 할 컴퓨팅과 모바일의 과제들을 담아내고, 앞으로 애플 기기가 가려는 방향성이 고스란히 담깁니다. 그래서 이를 잘 살피면 애플의 많은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애플워치와 워치OS도 마찬가지입니다. 애플워치는 작은 디스플레이와 배터리라는 기기적 한계를 갖고 있지만 돌아보면 꽤 극적인 변화들이 이어져 왔습니다. ‘더 할 게 남았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기기 중 하나가 바로 애플워치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 올해 애플워치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커트라인’입니다. 애플워치 시리즈 6, 7, 8과 더불어 1세대 애플워치 울트라까지 모두 워치OS 27 업데이트를 받지 못합니다. 2019년에 나온 아이폰 11도 iOS27을 올려주는데 2022년에 나온 애플워치는 이제 업데이트가 멈춥니다.
보통 이런 상황이 닥치면 ‘애플이 새 제품을 팔려고 강제로 기술 지원을 끊는다’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 상황은 조금 다릅니다. 데이비드 클라크(David Clark) 워치OS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시니어 디렉터에게 직접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애플은 소프트웨어를 내놓을 때 그 기기가 최고의 경험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소프트웨어가 어떤 것을 하려면 필요한 기본적인 성능, 그리고 물리적인 요소들이 필요합니다. 워치OS 27를 비롯한 다음 세대 운영체제는 애플 인텔리전스와 시리 AI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두었습니다. 이를 매끄럽게 처리하려면 애플워치 시리즈 9, 애플워치 울트라 2 이후의 하드웨어가 필요했습니다.”

프로세서의 역할 ‘빠른 앱’에서 ‘AI’로 전환
3개 세대의 제품이 한 번에 업데이트가 밀린 가장 큰 이유는 프로세서 때문입니다. 이번에 업데이트에서 제외된 애플워치 시리즈 6, 7, 8에는 각각 S6, S7, S8 칩이 들어갑니다. 애플워치 울트라도 S8을 넣었습니다. 이 세 칩은 세대 구분은 명확하지만 ‘컴퓨터’라는 관점으로 보면 사실 같은 세대입니다.
애플워치에 들어가는 프로세서는 단순히 CPU, GPU, 메모리만 들어가 있는 게 아니라 센서, 컨트롤러 등이 통합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세대마다 새로운 운동을 읽어들이거나 고도, 수심 파악 등을 읽는 방법이 바뀌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칩을 SiP(시스템 인 패키지)라고 부릅니다. 칩의 세대 앞에 S를 붙인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세 개 세대의 칩의 뼈대인 CPU와 GPU는 모두 똑같습니다. A13 바이오닉 칩에 뿌리를 둔 프로세서가 들어 있습니다. 이 칩의 핵심 방향성은 앱 실행 속도를 높이고, 전력 소비량을 낮추는 데에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애플워치 시리즈 7은 배터리 이용 시간을 유지하면서도 더 큰 화면과 고속 충전을 넣을 수 있었습니다. 이건 S7 칩의 전력 제어를 가다듬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시리즈 8의 핵심 기능이던 자동차 충돌 감지 역시 S8 패키지 안에 고중력 가속도 센서가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S6 이후로 애플워치는 앱을 실행하는 데에 성능 부담이 크게 줄었습니다. 로딩이 빨라졌고, 앱 여러 개를 띄워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성능에 여유가 있으니 전력 관리도 숨을 돌렸고, 여러 가지 센서와 운동을 읽어들일 수 있게 됐지요. 하지만 중요한 게 빠졌습니다. 바로 AI입니다.
2023년, 애플워치 시리즈 9과 울트라 2의 S9 칩이 그 전환점입니다. A16 바이오닉 칩을 뼈대로 하면서 앱 실행에 필요한 성능이 크게 높아졌고, 무엇보다 AI를 처리하는 뉴럴 엔진이 더해졌습니다. A16 바이오닉의 16코어 뉴럴 엔진이 초당 17조회(17 TOPS)의 연산 성능을 냈습니다. 애플이 정확한 성능 수치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애플워치에는 4코어 뉴럴 엔진이 들어갔고 이 연산 능력은 코어 수에 비례하기 때문에 대략 4분의 1 수준인 4 TOPS 정도의 성능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사실 NPU 관점에서 보면 이 정도의 성능은 아쉬운 수준입니다. 하지만 수치보다도 이 전용 엔진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더 큽니다. 시리즈 9 이후의 애플워치는 이를 통해서 시리의 기능 일부, 그러니까 애플워치를 제어하는 간단한 명령어들을 아이폰이나 인터넷 연결 없이도 처리할 수 있게 됐습니다.

워치 OS 27도 여전히 큰 일은 아이폰에 의지할 수밖에 없지만 소형 모델을 돌려서 더 즉각적으로 빠른 처리를 하고, 일부 앱들이 이용자의 습관과 운동 방식을 학습하는 데에도 뉴럴 엔진이 쓰입니다. 워치 안에서도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시리 AI를 넣는 것이 이번 운영체제 업데이트의 중심이기 때문에 NPU가 없는 기기들은 새 운영체제의 차별점을 보여주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워치OS 27의 시리 AI는 기기 내부에서 직접 할 수 있는 일들이 더 늘어났고 애플워치가 직접 수집하고 이해하는 개인 맥락의 범위도 늘었습니다. 특히 셀룰러 모델을 쓴다면 아이폰을 집에 두고 운동을 나와도 클라우드를 통해 내 아이폰의 맥락과 연결되고, 시리 AI의 대화가 온전히 이어집니다.
한편으로는 기존처럼 아이폰의 시리 AI를 연결해주는 기능으로도 충분히 워치OS27과 애플 인텔리전스를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아쉬움이 남기도 합니다. 조금 야박하게 느껴지지만, 워치 자체의 기초 체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온전한 경험을 줄 수 없다는 게 애플의 판단으로 보입니다.
애플 인텔리전스는 애플워치를 어떻게 바꿔놓을까?
당장 워치OS 27을 보면 시리 AI 외에는 눈이 번쩍 뜨일 만큼 파격적인 변화가 안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찬찬히 써보면 애플 인텔리전스와 연결되는 변화들이 꽤 숨어 있습니다. ‘동적 앱 그리드’는 꽤 효율적입니다.
이제까지 애플워치는 디지털 크라운을 누르면 동그란 앱 아이콘이 화면에 깔렸습니다. 문제는 앱이 많아지면 앱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특히 앱 이름이 뜨지 않는 애플워치 특성상 헷갈리는 부분들이 꽤 있었고, 이 때문에 이름과 함께 나오는 목록 형태로 바꿀 수 있지만 애플워치 특유의 맛이 살지 않았습니다.

새로 들어간 동적 앱 그리드는 내가 자주 쓰는 앱,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쓸 것 같은 앱을 여섯 개 꼽아서 띄웁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뉴럴 엔진이 판단한 것이고, 실제로 써보면 생각보다 지금 쓰려는 앱을 잘 찾아줍니다. 물론 이 안에 찾는 앱이 없을 때도 있어서 기존의 앱 그리드 화면을 띄워야 할 때도 있지만 점점 그 빈도가 줄어들긴 합니다.
데이비드 클라크 디렉터는 이 기능이 대표적으로 맥락과 정보를 읽는 애플 인텔리전스 기능이라도 소개합니다. 얼핏 별것 아닌 기능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나름 애플워치 안에서는 고민 끝에 만들어진 결과물입니다. 배터리와 크기가 극도로 제한된 스마트워치에서 사용자의 패턴을 쉬지 않고 계산하기 위해 매번 CPU와 GPU를 깨우는 건 엄청난 부담입니다. 언제 일어날 지 모를 일에 대해 일상적인 예측을 하려면 전력 소비량이 훨씬 적은 뉴럴 엔진을 이용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앞으로 워치OS의 AI 관련 기능들은 이처럼 뉴럴 엔진으로 확장될 계획입니다.
시리 AI, 애플워치를 다루는 가장 좋은 방법
애플이 구형 기기의 OS 지원을 멈추는 기준을 보면, 단순한 연산 속도보다는 운영체제가 지향하는 핵심 기술을 끌고 갈 수 있는지가 가장 큰 기준이 됩니다. 그리고 지금 그 핵심은 ‘애플 인텔리전스’를 운영할 수 있는 ‘뉴럴 엔진’입니다. 앞서의 이야기처럼 뉴럴 엔진이 없는 애플워치 시리즈 6, 7, 8, 그리고 1세대 애플워치 울트라는 새 운영체제의 의미를 살리지 못한다고 본 셈입니다.
“새 운영체제는 시리 AI가 개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더 깊이 개인화되고 맞춤형 답변을 내놓는 데 집중했습니다. 늘 손목에 차고 있는 애플워치는 시리 AI를 만나는 가장 자연스러운 접점이자, 운동과 건강 정보를 마주하는 첫 번째 기기입니다.”
데이비드 클라크 디렉터 역시 워치OS 27 시리 AI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돌아보면 애플워치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부터 이 자그마한 기기를 완성할 마지막 퍼즐은 ‘시리’였습니다. 글자 입력부터 앱을 찾고, 명령을 내리는 걸 작은 버튼으로 처리하는 건 기기 경험의 가장 답답한 부분이었고, 애플은 이를 AI로 서서히 풀어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24시간 손목에서 가장 개인화된 정보들을 수집하고, 분석하고, 또 소통하는 방법으로 애플 인텔리전스를 중심에 두는 것입니다. 다만 애플도 AI가 이렇게까지 빠른 속도로 우리 일상에 파고들 줄 몰랐고, 구형 기기로는 원하는 걸 이루기 어렵다는 답을 얻은 것이지요.

우리는 애플워치에게 무엇을 바라 왔을까요? 단순히 스마트폰을 대체하는 걸 아닐 겁니다. 그저 패션의 영역도 아닐테고요. 애플워치는 더 개인화된 정보들을 항상 수집하고, 분석하고, 또 즉각적으로 답을 들을 수 있는 ‘스마트’ 기기였고, 그 형태가 손목에 자리 잡은 시계였을 뿐입니다.
워치OS 27은 그 거대한 방향성을 향해서 다시 움직이는 계기입니다. 당장 시리 AI가 엄청나게 만족스러운 답을 내어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시간이 더 필요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중요한 건 애플이 애플워치가 가야 할 길을 정확히 찾았다는 점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AI 환경에서 애플은 지금 그렇게 달콤한 상황에 놓여 있지는 않습니다. 특히나 어려운 로컬 AI로 지향점을 세웠고, 메모리의 가격은 계속 오르고 있습니다. 뼈대가 되는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드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애플의 방향성은 어려울 뿐, 가능한 일이고, 또 AI가 더 안전하게 많은 개인정보의 가치를 살려줄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방법입니다. 애플워치도 그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었다는 점, 빠른 결단이 필요했다는 점은 이해되지만 아쉬움은 어쩔 수 없긴 합니다.



